내가 캐리커쳐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약 사십년 전 신문에서 유명인사의 얼굴을간략하게 그린 그림을 보고 부터이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캐리커쳐를 본격적으로그릴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무관하게 느껴 지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그리게 된 것은 내가 1988년부터 8년간 맡게 되는 한겨레 신문의시사만화 ‘한겨레 그림판’을 맡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리고 싶든 말든 나는 캐리커쳐를그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주로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관료나 정치인의 캐리커쳐였는데 초기엔 아직 민주화가 진행되지 않아 매우 조심스럽게 과장을 했었다. 그러나나는 조금씩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과장을 하기 시작하며 공격의 펀치력을 높여 나갔다.
여기에는 한겨레 신문이 국민주주의 신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나는 매우 많은 과장을 하게 되어 권력자들을 희화화 하면서 공격하였고 대중들은 매우 좋아하였다. 나는 강한 공격을 하면서도 웃게 만듦으로서 적대감을 해소 하려 노력하였다. 적 조차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 나의 전략이었고 시사만화의 힘이기도 하다.
민주화가 많이 진행되자 나는 시사만화를 떠났다. 그리고 시민들을 그려 주기 시작했다.
물론 특징을 잡아 과장하여 사람을 웃게 만드는 캐리커쳐였다.
그러나 한번의 사건이 나를 다른 생각으로 이끌었다.
어느날 친구들과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다른 테이블에서 어떤 사람이 다가와 나의 팬이라며 사인을 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항상 하듯이 그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려 주었다. 그는 자리에 돌아가 그의 친구들에게 그림을 보여 주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 그림을 보고 아주 똑 같다고 웃어댔다. 나는 오늘도 성공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나의 한 친구 만화가가 전해 준 이야기는 달랐다. 사인을 받아 갔던 그 사람이 친구들이 웃는 것을 보고 나중에 아무도 몰래 그 그림을 구겨서 테이블 밑으로 버리더라는 것이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도 재미있고 또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었지만 본인이 괴로워 한다면 대체 그런 캐리커쳐는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런 그림은 대체로 사람들의 약점을 과장하여 그리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오히려 사람들의 약점을 감추어 주고 격려 해 주는 그림을 주로 그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매우 행복해 하였다. 나는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독특한 문화인지 전세계의 일반적인 현상인지 모른다. 때로는 시원하게 과장한 것이 통쾌 하고 또 그런 것을 좋아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즈음은 조금 더 과장하면서도 불쾌 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이 3D 영역을 벗어나서 NPR 등의 기법으로 만화나 캐리커쳐의 영역으로 확대될 때, 관심 가질 만한 것들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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